고시원을 운영하는 A씨는 건강상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 2년 전 경매로 낙찰 받은 근린상가 6층을 고시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1억원 정도 시설권리금을 주고 들어올 사람은 있는데 임차인이 아닌 건물의 소유자가 권리금을 받고 새로 임차인을 들여도 되는지 A씨는 걱정이다. 주인이 권리금을 받으면 임차인이 나갈 때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어느 날 임대인 J씨는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고 깜짝 놀랐다. 계약서에 ‘임대인은 권리금을 인정한다’ 는 문구가 있으니 책임지라는 것이다. 아니 권리금이란 임차인들끼리 주고받는 것 아닌가? 이 경우에 임대인에게 권리금 반환 책임이 있는가? 사례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주인도 권리금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권리금이란 임차인들끼리 주고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 주인은 임대보증금을 받는 사람이고, 권리금은 들어오는 임차인이 나가는 임차인에게 주는 것으로 딱 금을 그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주인(임대인)이 권리금을 받지 말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먼저 권리금의 의미를 판례를 통해 살펴보자.
권리금의 정의
권리금의 지급은 임대차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아니고 권리금 자체는 거기의 영업시설·비품 등 유형물이나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우하우(know-how) 또는 점포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일정 기간 동안의 이용대가라고 볼 것인바, (대법원 2001.04.10. 선고 2000다59050 판결)
이와 같이 권리금이란 영업시설이나 거래처 등 무형의 재산가치를 말하는 것이며 그 가치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임차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임차인이 나갈 때 권리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잖아요?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권리금을 받아도 나중에 돌려줄 의무는 없다
임대인의 권리금 반환의무
권리금이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인에게 지급된 경우에는, 보장기간 동안의 이용이 유효하게 이루어진 이상’ 임대인은 그 권리금의 반환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대법원 2002.07.26. 선고 2002다25013 판결)
이와 같이 판례는 임대인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기간 중에 임대인 사정으로 임차인을 내보내야 하는 경우에는 권리금 반환의무가 생긴다. 5년으로 계약했지만 3년만 하고 나가라고 한다면,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권리금액, 다시 말해 받은 권리금의 5분의2에 상당하는 금액을 나가는 임차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위의 판결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인에게 권리금을 주었다고 해서 유리한 점이 별로 없네요?
그렇지는 않다. 권리금을 주인에게 준 경우는 나가는 임차인에게 준 경우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사례를 통해 두 경우를 비교해 보자.
주인이 권리금을 받으면 다음 임차인끼리의 권리금 거래에 협조해야 한다
L씨는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서 제과점을 직접 운영하다가 이 자리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하려는 M씨에게 권리금 1억원을 받고 넘겼다. 그런데 2년 후 M씨는 사정상 가게를 못하게 되었다면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계약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권리금이 2억원이라는 것이다. 임대인 L씨는 이 계약을 해주고 싶지 않다.
이 경우 임대인은 M씨로부터 권리금을 받았기 때문에 M 씨가 나갈 때 권리금 받아나가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관련 판례는 다음과 같다.
권리금이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인에게 지급된 경우에, 임대인은 그 권리금의 반환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임차인이 다른 사람에게 임차권의 양도 또는 전대차를 하여 권리금을 회수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 대법원 2001.04.10. 선고 2000다59050 판결)
나가는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주는 경우, 주인이 임차인끼리 권리금 거래를 방해하기도 한다
2년전 횟집을 운영하던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인수한 K씨는 사정상 이를 넘기려고 한다. 삼겹살 하려는 사람이 왔지만 임대인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계약을 거절했다. K씨가 또 다른 임차인을 데려 왔지만 역시 임대인은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결국 임차인은 권리금을 받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상가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아 나가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협조가 필요하다. 다음 사람과 계약을 하는 당사자가 바로 임대인이기 때문이다. 기존 계약을 그대로 두고 재임대를 하는 경우에도 역시 임대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관련 법규를 보자.
민법 제629조 (임차권의 양도, 전대의 제한)
①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임차물을 전대하지 못한다
②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임차인이 다음 임차인을 구해 임대인과 계약을 시키는 것이 법적으로는 위의 임차권 양도에 해당된다. 다른 사람에게 재임대 주는 것을 법적으로는 전대차라고 한다. 양쪽 모두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권리금을 주인에게 준 임차인은, 전 임차인에게 준 경우보다, 권리금 회수가능성 측면에서 그만큼 유리한 것이다.
‘임대인은 권리금을 인정한다’는 계약 조항의 의미
처음에 제시한 두 번째 사례를 좀 자세히 살펴보자.
임대인의 권리금 반환 약속으로 볼 수 있는가?
상가 건물 1층을 편의점으로 세주고 있는 임대인 J씨는 며칠 전 임차인 P씨로부터 만기가 되어 나가려고 하니 권리금 8천만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임대인은 권리금을 인정한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요구한다는 것이다.
J씨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3년 전 이 자리에 프랜차이즈 편의점 본사가 직영점을 열면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그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당시 J씨는 이 문구가 마음에 걸려 빼자고 했지만 프랜차이즈회사 직원은 늘 들어가는 문구라면서 임차인들끼리만 해당된다고 설명하여 넘어간 기억이 난다.
그런데 1년 전 직영점이 나가고 같은 조건으로 대신 들어온 임차인 P씨는 매출이 부진하여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나가게 되면서 계약서의 이 조항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 경우 임대인은 권리금에 대한 반환 책임이 없다. 권리금을 인정한다는 조항을 판례에서는 임차인들끼리 권리금을 주고 받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들끼리 권리금 주고받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본다
임대차 계약서의 단서 조항에 '모든 권리금을 인정함'이라는 기재를 하였다고 하여 임대차 종료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반환하겠다고 약정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단지 임차인이 나중에 임차권을 승계한 자로부터 권리금을 수수하는 것을 임대인이 용인하고, 나아가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박탈하거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경우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직접 권리금 지급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 2000. 4. 11. 선고 2000다4517,4524 판결)
이제 임차인 입장에서 한번 정리해보자. 비록 건물 주인에게 권리금을 주었다고 해도, 또는 ‘임대인은 권리금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계약서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임대인한테서 직접 권리금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임대인은 임차인 간의 권리금 거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권리금을 받도록 묵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임차인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상가 임대차 현장에서 임대인의 방해로 권리금을 못 받는 사례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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