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히 할수 없는 명도문제
소개할 이 사건은, 임차인 명도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건으로 기억된다.
오랫동안 보유하던 서울 서초구 소재 토지 및 지상건물(이하, 이 건 부동산이라고 함)을 250억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임차인명도문제로 고심하던 어느 의뢰인으로부터 의뢰받은 건인데, 사건
의뢰 당시 이 의뢰인은 매매대금 총 250억원에 계약금으로 40억원을 받고, 나머지 잔금 210억원은
계약체결일로부터 두달 이후에 지급받기로 예정된 상태에서, 생각했던 임차인 명도가 잘 풀리지 않
게되자 필자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잔금지급일까지 임차인명도를 완료하지 못하면 계약위반으로 자
칫 4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나름대로 임차인
명도를 낙관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즉, 이 의뢰인은 이 매매계약이 체결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건 부동산을 처분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 건 부동산의 모든 임차인들로부
터 ‘매매되면 언제든지 임대차를 종료한다’는 각서를 징구하고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었다. 또한
이런 각서와 더불어 명도에 관한 제소전화해까지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 의뢰인 입장에서는 명도에 관한 임차인들과의 약속은 도의적인 면에서나 법적인 면에
서 충분한 것으로 믿어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약속에 따른
명도를 정중하게 요구했지만, 임차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잔금지급일까
지의 명도에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 부동산을 팔아 큰 돈을 받았으니 그에 걸맞은
이사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 사안을 검토한 결과, 이 의뢰인의 경우는 잔금지급일까지 임차인 명도를 법적으로 장담할 수 없
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적절한 매수자만 나타나면 조만간 매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이 의뢰인
은, 신속한 명도를 위해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빠짐없이 명도에 관한 제소전화해를 해왔지만,
계약이 갱신되는 과정에서는 별도로 제소전화해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계약이 갱신될 때마
다 제소전화해를 하지 않더라도 명도에는 문제가 없다’는 다른 변호사사무실의 사무장 이야기를 믿
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자문이다.
‘갱신되는 계약이 종료하더라도 즉시 명도한다’는 내용이 당초 제소전화해조항에 없다면, 갱신된
계약에 대해서는 기존 제소전화해에서의 명도합의효력은 없다고 보는 것이 원칙이다. 계약갱신을 통
해 처음 임대차계약의 제소전화해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석되어져서 기존 제
소전화해조서를 통한 명도집행은 더 이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임차인
들이 자진해서 명도를 거부한다면 이 의뢰인으로서는 명도를 위한 소송(명도단행가처분 포함)을 새롭
게 제기해야하는데 불과 40일 정도를 앞두고 있는 잔금지급일까지는 이런 식의 일처리는 거의 불가능
했다. 이런 의견을 듣게 된 의뢰인은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 이 의뢰인에게 제시한 필자의 자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적인 절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일단 임차인들과 최대한 합의를 볼 수 있도록 한다. 다
행히도 임차인들은 기존 제소전화해조서의 흠결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만큼, 기존 제소전화해조서
를 무기로해서 합의를 진행하면 임차인들로서도 무리한 금액을 제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합의를 본 다음, 이 합의내용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제소전화해조서
를 작성한다. 제소전화해절차는 당사자간 합의에 근거한 것이어서 심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처럼 시일이 정해져있는 촉박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일을 빨리 정할 수 있다. 서둘러
일처리를 하면 잔금지급일 이전에 제소전화해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 이런 자문을 받은 이 의뢰인은 그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세로 신속하게 합의를 진행했고, 임
차인들 개인별로 1천만원 내외의 이사비 정도로 잔금지급일로부터 5일 전까지 명도하는 것으로 모든
임차인들과 합의를 끝낼 수 있었다. 또 이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제소전화해도 정확히 잔금지급일로부
터 15일 전에 성립시켰다.
▶ 이렇게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가 했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이 건 부동산에 있던 총 5명
의 임차인 중 4명은 합의된 내용을 잘 지켰지만, 나머지 1명의 임차인이 합의를 파기하고 약속한 명
도를 거부해버렸기 때문이다. 합의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잔금지급일로부터 5일 전으로 약속
된 명도일을 불과 이틀을 앞두고서, 즉 잔금지급일로부터 정확히 7일전에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
리는 것이었다.
▶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하에서, 고민해서 작성한 제소전화해조항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명도에 관한 합의는 명도일자를 정하고 ‘약속한 명도일자를 지키지 못하면 명도집행한다’는 정도
로 화해조항을 처리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만약 명도약정이 지켜지지 못하면 결국 법원집행
관을 통해 명도집행을 의뢰하는 절차를 거쳐야하는데, 집행관을 통한 명도에 적어도 1-2주의 시간이
걸리는 현실정에 비추어 볼 때 약속한 명도일자와 잔금지급일이 불과 5일 차이밖에 없는 이 사건의
경우에는 통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잔금지급일까지 시간을 맞추어서 집행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
다.
이에 필자는, 이런 통상적인 방법 대신에 ‘약속한 명도일자를 임차인이 지키지 못하면 그 날짜 이후
로부터 해당 부동산 내에 있는 임차인 소유의 물건들을 즉시 임대인이 취득하고, 이 물건들을 임대
인 임의로 처분하는 것에 대해 임차인이 동의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삽입하여 화해조서를 만든 것이
다. 문제의 이 임차인 역시 처음 합의할 당시에는 명도일자를 지킬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구
에 대해서 흔쾌히 동의해서 이런 문구가 화해조서에 기재될 수 있었다. 임차인이 명도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원칙적으로는 법원판결을 받아 집행관의 집행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고 임대인의 사적인 집
행은 법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 건의 경우에는 막대한 위약금이 걸린 잔금지급일이 임박
했고, 또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제소전화해라는 절차로 처리되었던 만큼 아예 소유권을 넘
기는 방식의 이런 화해조항이 법원에서도 쉽게 통과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임차인이 명도일자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명도일자 이후에 현장에 남아있던 물건전부
의 소유권이 즉시 임대인 앞으로 넘어오게 될 수 있었고, 이런 법률관계 덕분에 임대인으로서는 복잡
하고 시간이 걸리는 법원집행절차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의뢰한 용역업체를 통해 신속하게 물건을 수
거할 수 있었다. 약속한 명도일자 이후에는 물건 소유권이 임대인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면서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하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건을 경험한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입장에서
혹시나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만든 법적인 조치들이 현실화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임차인 덕분(?)에 세심한 법적 조치들이 돋보이는 케이스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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