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만 남은 집 얕보면 안돼
짐만 남은 집 얕보면 안돼
경기도 부평에 사는 M씨는 경매 나온 서울 용산구 후암동 빌라에 관심이 쏠렸다. 인천에 있
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종로로 직장을 옮긴 뒤 출퇴근이 버거워 이사를 계획하던 차 감정가에서
20% 낮아진 후암동 빌라를 발견한 것이다. 현장에서 경비원을 만난 M씨는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을 건
네며 경매 나온 집에 대해 물어봤다. “원래 집주인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나 몇 개월 동안 빚쟁이
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종적을 감췄고 1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나타나
질 않았다. 가재도구며 가전제품, 가구를 다 남겨두고 몸만 빠져나갔다”는 경비원의 말을 들었다.
M씨는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니 명도 과정도 힘들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중개업소를 통
해 시세를 조사하던 중 많은 사람들이 경매 물건을 조사하러 왔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M씨는 경쟁이
심할 것을 예상하고 최저가보다 금액을 많이 높여 거의 감정가에 가깝게 낙찰가를 써냈다.
8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낙찰된 M씨는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M씨는 주인이
두고 간 쓸 만한 가전제품도 덤으로 얻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사후처리를 상의하기 위해 법무사 친
구를 만난 M씨는 좌절하고 말았다. 잠적해버린 주인이 두고 간 가재도구와 가구는 갖기는커녕 낙찰자
가 임의로 치우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M씨의 고달픈 짐 처리 과정이 시작됐다. 인도명령을 신청했으나 송달이되지 않아 특별 절차
를 밟는 데 2달 이상이나 소요됐다. 결국 공시송달을 거친 뒤 관리실의 동의를 얻어 성인 2명의 입
회 아래 사진을 찍어 증빙자료를 만들고, 목록을 작성했다. 그런 다음엔 이사업체를 불러 짐을 운반
하고 컨테이너에 대여해 보관해야 했다. 이사비에 보관료도 몇 달치 선불로 지급해 300만원이 소요됐
다. ‘꿩 먹고 알 먹고’라고 생각했던 가재도구는 덤이 아니라 오히려 거추장스런 짐만 됐다.
법원경매 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일, 즉 명도(明渡)다. 그중에서
도 채무에 쫓겨 미처 살림살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잠적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가 명
도 중 가장 어렵다.
민사집행법에서는 대금을 납부하고 6개월 이내 인도명령 제도를 이용하면 소송 없이 비교적 손쉽게
부동산을 인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채무자에게 보내는 인도명령서의 송달이 문제될 수 있다.
인도명령은 그 결정문이 상대방에게 도달한 시점부터 효력이 생기는데 주인이 행방불명이니 법원에
서 보낸 우편물을 받을 리 만무하다. 이럴 때는 특별송달을 신청한다. 그럼에도 채무자에게 송달되
지 않을 경우에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송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인 ‘송달보고
서’를 복사해 ‘공시송달’을 요청한다. 결국 특별송달과 공시송달까지 각 1개월씩 2달이 소요되
고, 공시송달 이후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또 2주가 더 걸리므로 시간상 2~3개월을 손해 보게 된다.
일단 이런 방법으로 송달 문제를 해결한 다음 집행관사무소에 명도집행을 의뢰한다. 낙찰자가 보관
장소를 지정해 명도 집행한 후 물건을 보관하면 된다. 대개 이삿짐업체가 운영하는 보관소를 이용하
는데 짐의 양과 보관 기간에 따라 보관금이 부가된다. 그 후에도 채무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들어간 비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재도구에 압류절차를 거쳐 동산경매를 실시
한다. 값어치가 나가는 짐이라면 낙찰자가 있을 수 있지만 쓰레기와 다름없는 것들이라면 사는 사람
이 없다. 그렇더라도 낙찰자가 낙찰받아야 비로소 종결되기 때문에 쓸모없는 물건들을 보관하고 스스
로 낙찰받고 버리는 데 또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인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은 짐 처리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일반적인 명도
비용보다 많이 지출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낮은 금액으로 낙찰받아야 손해가 없다.